
《조커(JOKER)》는 단순한 DC 코믹스 기반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영웅과 빌런의 대립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현대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심리 드라마이자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특히 공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장면보다도,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법한 사건과 감정의 흐름이 더 큰 긴장과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정신질환, 빈부격차, 고립감, 그리고 폭력성이 자라나는 사회 구조를 세밀하게 포착하며, 한 개인이 ‘악당’으로 낙인찍히기 이전에 어떤 상처와 무시, 왜곡된 체계 속에서 길을 잃게 되는지를 집요할 만큼 깊이 있게 따라간다. 특히 조커라는 상징적 인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두고, 그가 겪는 주변의 무관심과 억압, 그리고 체제의 붕괴가 어떤 방식으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변형시키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 영화 속 조커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결과물’이며, 그 과정을 관객이 직접 목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강렬한 현실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 감상문에서는 공포 장르의 외형적 자극보다 오히려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 영화 《조커》의 사회적·심리적 ‘현실성’에 주목하여, 그 내면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정신질환자에서 ‘악당’이 되기까지 – 시스템의 실패
조커의 본명은 아서 플렉.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사회복지 제도 하에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고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는 광대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그가 처한 삶은 철저히 외롭고 차별에 찌든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현실'을 무섭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아서는 늘 무시당하고, 거리의 폭력에 노출되며, 자립적인 삶을 꾸릴 수 없는 구조 속에 갇혀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겪는 고립과 차별이 영화 속 아서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사회복지 예산 삭감으로 그는 상담도 중단되고, 약도 더 이상 처방받을 수 없다. 이는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실제 사회에서 반복되는 정책 실패이자,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겪는 현실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이 장면들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 영화는 비명을 지르거나 귀신이 등장하지 않지만, 아서가 사회로부터 방치되고, 웃음으로 감정을 감추려 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더 큰 공포를 느낀다. 그 웃음은 기괴하거나 피에로 같기보단 오히려 슬프고 괴이하다. 이 점에서 《조커》는 현실의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고통을 아주 집요하게 추적한다. 아서의 웃음 발작은 실제 신경 질환(웃음 실조증, Pseudobulbar affect)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그는 자신이 웃고 싶지 않을 때조차 웃음을 터뜨린다. 타인에게는 조롱처럼 비치고,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로 인해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모든 대화는 왜곡되고, 모든 관계는 무너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커’라는 상징적 악당이 단순히 광기의 상징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세상은 결코 그를 품지 않았고, 끝내 그를 파괴한 것이다. 결국, 조커는 ‘악당’이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현실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사회는 누구를 괴물로 만들고 있는가?”
2. 불평등과 폭력 – 차별이 만든 분노의 구조
《조커》는 계층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시종일관 꿰뚫고 있다. 아서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단순히 가난하거나 병든 상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무시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의 삶은 사회적 시야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고,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영화 중반, 지하철에서 정장을 입은 남성 3명이 여성에게 성추행을 하다 아서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은 핵심적이다. 이 장면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 개인에게 얼마나 쉽게 전이되는지를 보여준다. 아서는 이 장면에서 충동적으로 총을 발사하게 되고, 이는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시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음을 느낀다. 여기서 영화는 불편한 진실을 건드린다. 소외된 개인이 극단적 행동을 통해서만 사회에 ‘인식’될 수 있다는 점. 이 부분에서 조커는 단지 범죄자가 아니라, 왜곡된 사회 시스템의 ‘결과물’로 기능하게 된다. 이후 아서의 총격 사건은 '고담시' 전체를 뒤흔든다. 가면을 쓴 조커 추종자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그들은 하나같이 외친다. “우리는 모두 조커다.” 이 장면은 단순히 혁명을 상징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망한 민중의 분노가 한 방향으로 수렴될 때 발생하는 ‘집단적 광기’를 보여준다. 아서의 고통은 개인적이지만, 그의 상징성은 집단적이다. 이는 영화가 ‘조커’라는 존재를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 속 수많은 ‘보이지 않는 자들’의 분신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강렬하다. 게다가 아서가 동경했던 인물인 토마스 웨인이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긴다”며 무시하는 장면은 영화가 그리는 계층 간의 간극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말은 아서를 더욱 고립시키며, 결국 가족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정체성의 붕괴는 결국 ‘분노의 내면화’를 넘어, ‘폭력의 외면화’로 이어진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 자아는, 세상을 향해 반격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변모한다. 《조커》는 이렇게 말한다. 차별과 불평등, 소외는 단지 슬픈 현실이 아니라, 폭력을 만드는 구조적 환경이다. 영화는 악의 기원을 조명함으로써, 오히려 이 사회가 ‘악당’을 어떻게 탄생시키는지 되묻는다.
3. 광기인가, 각성인가 – 사회적 시선의 영화 재해석
《조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서가 메이크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이전까지의 모든 고통, 절망, 무기력의 상징이었던 인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각성’의 순간처럼 그려진다. 그의 춤은 광기의 춤이면서 동시에 해방의 제스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조롱당하거나 무시당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바라보던 사회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스로의 규칙과 감정에 따라 존재하는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결코 단순한 ‘멋진 반전’으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춤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 우리는 그가 저지른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 그는 머레이 쇼에 출연해 “나는 비참하고, 혼란스럽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 뒤, 쇼 진행자를 살해한다. 이는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향해 씌운 ‘광기’라는 이름에 스스로 편입되기로 한 자의 선언이다. “당신들은 나를 광인이라 불렀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했을 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 대사 없는 내면의 흐름이 바로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지 규정하려 한다. 이상한 사람, 미친 사람, 위험한 사람. 그리고 그 시선은 결국 누군가를 그 프레임에 가두게 만든다. 조커는 단순히 ‘악’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실패가 만든 괴물이며, 거울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한다. 그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사실, 관객 ‘우리 자신’ 일 수 있다고. 《조커》는 코믹스 기반의 캐릭터를 활용했지만, 히어로나 악당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을 넘어선 서사를 담아낸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외로운 개인, 실패한 제도, 공감 없는 시스템을 냉정하게 비춰준다. 그래서 조커는 무섭다. 단순히 피를 흘리고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아서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는 단지 ‘태어난 괴물’이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아서들의 압축된 형상이다. 《조커》는 마지막에 명확한 교훈을 남기지 않는다.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이 조커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누군가를 또 조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주는 공포는 그래서 더 깊고 묵직하다. 그것은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가 아닌, 다큐보다 더 리얼한, 현대사회의 자화상. 《조커》는 절망의 이야기이자, 인간과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