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콩(King Kong)’은 단순한 괴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가 등장하는 모든 영화에서 킹콩은 파괴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괴물’의 상징이자, 인간과 자연 사이의 비극적인 틈을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1933년부터 2005년, 2017년, 2021년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리메이크되며 킹콩의 이미지는 시대와 함께 진화했지만, 그 본질은 항상 ‘외로운 비극의 존재’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킹콩’이라는 캐릭터를 괴수가 아닌 하나의 비극적 영웅(anti-hero)으로 해석하고, 그의 행동이 단순한 본능이나 폭력이 아닌 고립된 생명체의 감정과 인간성의 상징임을 짚어보려 합니다. 킹콩은 왜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지, 그의 죽음이 왜 가슴 아픈 비극으로 느껴지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사회는 어떤 반성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비극영웅으로서의 킹콩
킹콩은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 등장하는 ‘선하고 강한 존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인간 사회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이야기는 철저한 비극적 영웅 서사를 따릅니다. 영웅이란 강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고통, 희생, 오해, 그리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여정까지 포함될 때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부릅니다. 킹콩은 바로 그러한 모든 요소를 지닌 캐릭터입니다. 킹콩의 등장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됩니다. 탐험가, 과학자, 영화 제작자 등 인간의 호기심과 야망은 정글 속 평화롭게 살던 킹콩을 깨웁니다. 킹콩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며 살아가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를 발견하고, 이용하고, 도시로 데려와 전시하려 듭니다. 이 지점에서 킹콩은 더 이상 괴수가 아닌, 문명의 희생자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뉴욕에서의 최후입니다. 높은 빌딩 위로 올라가 인간의 공격을 피하려다 결국 총격에 쓰러지는 킹콩의 모습은 단순한 괴수의 죽음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끝내 자리를 잃고 쓰러지는 장면으로, 관객에게 깊은 연민을 자아냅니다. 그는 끝까지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랑했던 여인을 지키려 했고,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킹콩 영화에서 인간 남성 캐릭터보다 킹콩이 더 복잡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 분노, 호기심, 애정, 상실감 등을 고스란히 느끼며, 때로는 침팬지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감정 지능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 고통을 인지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서 킹콩을 영웅 서사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장치입니다. 킹콩의 비극은 결국 오해로부터 시작된 불가피한 파멸이라는 점에서 더욱 강조됩니다. 그는 사람을 해치기 위해 도시로 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에게 의미 있었던 존재를 찾으려 했고, 그 감정이 폭력으로 오인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킹콩의 행동을 단순한 위협이 아닌, 비극적 사랑과 오해의 결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를 '괴물'이 아닌 '영웅'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킹콩이 느끼는 외로움
킹콩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감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그는 단순히 큰 생명체가 아닙니다. 자신과 같은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립된 생명체입니다. 특히 2005년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에서는 이 외로움의 정서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킹콩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함으로 인해 결코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습니다. 동족도 없고, 사랑하는 존재와 가까워질 수도 없으며,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언어도 없습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킹콩은 철저하게 ‘혼자인 존재’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과도 맞닿아 있는 주제입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 앤(Ann Darrow)과 킹콩의 관계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킹콩은 그녀를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붙잡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지키고, 그녀와 교감하려 합니다. 이 장면은 육체적 차이와 종 차이를 뛰어넘어 감정적 연결을 시도하는 존재로서의 킹콩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국 킹콩의 이 감정은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그의 애정은 사회적으로 금기이며,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더 큰 비극이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킹콩이 하늘을 바라보거나, 혼자서 자연을 거닐며, 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낍니다. 이는 ‘괴수’라는 타이틀 아래 가려져 있는, 감정을 가진 존재의 고독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특히 킹콩이 인간 사회에 끌려와 도시 한복판에 전시될 때, 그는 그저 ‘보여지는 존재’로 전락하며 존엄성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이는 인간 사회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 이해보다는 통제와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 폭력성을 비판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킹콩의 외로움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고립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소외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울부짖고 손을 뻗어도, 그를 이해해줄 이가 없다는 절망. 이것이 바로 킹콩이 가진 가장 큰 비극이며, 그의 행동들이 공격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끊임없이 연민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외로운 이의 분노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은 절규일지도 모릅니다.
킹콩이 상징하는 인간성과 사회의 반영
킹콩은 괴수이자 거대한 동물로 등장하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 사회에 대한 거울과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단순한 상상 속 괴물이 아니라, 인간성과 문명사회의 그림자를 반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킹콩의 행동은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고, 그의 파괴는 인간의 탐욕과 무지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괴물’이라는 정의를 다시 묻게 만듭니다. 킹콩은 자기가 살던 섬에서 벗어나고 싶어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들어와서 그의 삶을 파괴했고, 억지로 문명의 세계로 끌고 와 ‘상품’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 지점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자연의 존재를 이해하지 않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태도, 야생의 생명을 전시하고 이익을 위해 소비하는 구조는 오늘날 동물원, 사육 산업, 환경 파괴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킹콩은 저항합니다. 그러나 그 저항은 문명 앞에서는 ‘위협’이 되고, 그는 통제 불능의 존재로 낙인찍힙니다. 이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나 비주류가 어떤 방식으로 대상화되고 억압당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킹콩은 인간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사회적 기준에서는 배척당하는 존재입니다. 즉, 인간성과 시스템의 충돌 지점에서 파괴당하는 존재가 바로 킹콩입니다. 또한 킹콩은 문명의 가장 높은 곳, 뉴욕의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는 단순한 클라이맥스 장면이 아니라, 자연이 문명에 의해 정복되고 희생되는 구조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인간은 킹콩을 쓰러뜨렸고, 동시에 인간성의 일부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앤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비록 그가 ‘괴물’일지라도 ‘사랑’과 ‘감정’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며, 우리가 정말 괴물은 누구인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킹콩은 그렇게 자연, 감정, 사랑, 폭력, 그리고 인간의 욕망까지 복합적으로 내포한 존재입니다. 단순히 크고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문명과 야생, 인간과 타자, 통제와 존중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우리가 킹콩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결국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킹콩은 괴수 영화 속 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는 비극적 영웅이자 외로운 감정의 화신, 그리고 인간 사회의 거울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존재의 절망이고, 우리가 만든 문명에 의해 파괴된 순수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킹콩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외면했던 인간성과 타자에 대한 존중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킹콩 영화를 다시 본다면 단순히 괴수 영화가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과 충돌하며 끝내 사라지는 한 편의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드라마로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질문해보세요. 진짜 괴물은 킹콩일까요, 아니면 킹콩을 그렇게 만든 우리일까요?